안녕하세요! 예술 정보 채널입니다. 오늘은 비잔틴 문화와 예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비잔틴 문화와 예술!
1) 콘스탄티노플의 무역
비잔틴에서는 황제가 예수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가진 인물로 등장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무역을 위해서 만들어진 도시이며 그 부 역시 무역을 통해서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동서양의 가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무역과 성지순례의 꼭 필요했던 거점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에서 상인들은 개인적으로 재산을 축적할 수 없었고, 무역으로 얻은 부는 모두 국가와 궁정으로 귀속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마치 사회주의적이었던 이유는 콘스탄티노플은 외세의 침략이 많았기 때문에 군사력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고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궁정에서 큰돈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도시의 문화는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반도의 무역도시들처럼 자유롭지 못하고 보수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단 한 명의 전제군주인 황제를 찬양하기 위한 방향으로 꽃피게 되고 때로는 종교마저 그러한 목적을 위해서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종교와 예술을 이용하게 됩니다.
2) 비잔틴 제국 황제와 예술의 관계
비잔틴 예술의 중요한 목표는 황제의 권위를 널리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모자이크에서 황제는 마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의 모습처럼 정면을 보고 엄숙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비잔틴 예술에서는 예수는 왕, 성모 마리아는 황후처럼 표현되었습니다. 성 소피아 대성당에 있는 이 모자이크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를 중심으로 황제와 황후가 각각 성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황제와 황후가 성모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또, 황제가 쓰고 있는 관이나 수염, 황후의 머리 모양이 당시 서구의 의복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이는 당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 비잔틴이 동서양의 중간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국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부분입니다. 오늘날 서구의 유물인 황제나 왕의 긴 제의,
대관식 등은 비잔틴 제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3) 라벤나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후 테오도라의 모자이크
비잔틴의 초기 모자이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입니다. 과거에는 굉장히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라벤나를 게르만 용병 아리우스파에서 자신들의 수도로 삼게 됩니다. 아리우스 파는 정통 기독교와는 다른 예수의 신성을 많이 약화시킨 분파였는데 라벤나가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동로마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 반도에 자신들의 군사적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 계속 라벤나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후 동로마제국에 들어가게 된 라벤나는 제2의 수도가 되어 화려한 동로마 그리스 정교의 성당과 모자이크들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 결과가 산비탈레 성당입니다. 이때까지는 천연재료로 다양한 안료를 만들기 어려웠고 그래서 성당의 내부를 장식할 때 장인들은 그림을 그리는 대신 모자이크를 사용했습니다. 유리나 금속 등의 돌조각인 테세라를 이용해서 표현했고 얼굴에 붙이는 테세라는 더 작은 알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예수의 모자이크 양 옆으로 왼편에는 당시 비잔틴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아누스 1세와 신하들이, 오른편에는 테오도라 황후와 시녀들이 각각 성물과 성배를 들고 예수에게로 나아가는 장면들이 모자이크로 만들어졌습니다. 황제와 황후는 예수가 집전하는 미사에 참여하러 가는 모습을 통해 예수와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있는 선택된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모자이크가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60세가 넘은 나이었지만 젊고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황제를 묘사했습니다. 이는 예수와 성모를 항상 젊고 완벽한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이를 통해 로마 못지않은 제국의 제2 수도로 라벤나를 키우려 하는 비잔틴 제국의 경쟁심이 결의와 경쟁심이 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 라벤나는 항구도시로서의 기능을 잃으면서 작은 소도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4) 동로마 제국의 성당에 새겨진 모자이크의 성모자, 예수
동로마 제국의 모자이크와 회화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예수의 전범적인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때로는 황제와 같이, 때로는 장군과 같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비잔틴 제국의 유물 중에 시나이 산의 예수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얼굴을 장식한 패널이 있습니다. 비대칭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데 왼편은 온화하고 자비로우며 오른편은 엄격하고 심판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비잔틴 사람들은 최후의 심판이 멀지 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래보다는 예수가 생존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했기 때문에 복고적인 예술로 회귀에 대한 원념을 표현했습니다.
5) 황제와 예수 : 군신의 관계
성 소피아 대성당에는 황제가 예수에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듯한 모자이크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무릎을 꿇은 레오 6세 황제가 후손을 얻기 위해서 교회의 법을 어기고 6 법이나 결혼을 했기 때문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도 예수는 용서하지 않고 아주 단호하고 엄격한 심판자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자이크들을 보면 황제와 예수 사이에 어떠한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정의하려고 했던 의도가 보입니다. 이러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합쳐진 동로마 제국의 정치체제가 타당하다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양편에 두 명의 황제가 각각 콘스탄티노플을 성모자에게 공헌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황제와 예수가 군신과 같은 관계로 묘사됨으로써 긴밀한 관계가 맺어져 있다고 이야기하려고 했던 모자이크들의 정치적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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